어떤 쪽팔리는 나의 fanship에 대한 소회 Music

▲ I LOVE YOU MEG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혹은 좋아해 왔거나 좋아하게 된(이 선어와 표현이 중요한 이유는 뒤에 더 언급하게 될 것이다)) 아티스트의 작품들 중 소위 '명반'과 '명곡'을 곧잘 추려내어 권하고 향유한다. 돈내고 음반 사서 즐기는 입장에서 그 가장 현요한 부분만 취해서 즐기겠다는 취지는 당연히 잘못된 게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일부 '지독한 팬쉽'의 소유자들이 그 예술가의 모든 작물을 존중하지 않는 작태라며 이를 비판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결국 추천받은 것만 골라서 훑고 지나갈 거면 그 아티스트가 과연 니 귀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건 그야말로 귀로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귀로 남의 감상만 듣는 게 아니라는 식의 도론이 주로 써먹히고 있다.

  아직은 음악을 많이, 깊이 즐겨보지 못한 졸자의 입장에서(스노브 흉내라도 내려고 현악4중주곡(작곡이 누가 되었든) 하나 아직 포팅해서 MP3P에 넣어보지 못하는 내가 뭔 말을 하겠는가? 낄낄) 양자는 모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의 졸렬한 팬쉽이란 이 양방에 모두 까이는 상위에 처해 있는지라 푸념거리가 있어 끄적여 보는 것이다(...).

  주변에서 내가 이 아티스트를 좋아한다고 하면 보통 나의 정치정향과 추악하고 음험한 근성을 아는 사람들은 의외라고 생각하는, U2를 알게 된 것은 중학시절이었는데, 사실 그 경로조차도 저 양방에 내밀기 쪽팔리는 것이라서 절로 비강을 손톱으로 어루만지게 한다. 굴지의 중등교육 학습지 제작사 지학사에서는 '독서평설'이라고 하는 중고생 대상 문학해설지(라고 쓰고 수행평가용 월간참고서라고 읽는다)를 냈었는데(지금도 여전히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대략 2000년 가을쯤 해서 이 잡지의 해외음악 소개코너에서 U2와 당시의 신보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가 나온 것을 보고는 무언가, 싶어서 앨범을 구입했던 것이다. 가장 처음 접했던 것은 1997년 말에 당시 스노브 중고생들 가운데서 대류를 탔던(...) BMG의 컴필레이션 반인 NOW 3 에 Staring at the sun이 나왔던 것이지만, 이때야 따로 음반을 사볼 생각은 못했는데 돈도 없었거니와 곡의 인상은 좋았지만 뭔가 가사 자체가 발을 씻으며 듣게 만드는 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동지의 소개코너 덕에 당년에 Bon Jovi의 <Crush>를 사서 듣고는 정말 대만족했었는지라 돈을 버리는 셈 치고라도 한번 사고픈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사실 Bon Jovi에 대해서도 그 팬쉽의 시발이 U2와 비슷했던 게 나였다).

▲ 나만으 명반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나로서는 제대로 된 CD 플레이어가 없었던 고로 카세트 테이프 본으로 구매했던 이 음반(그분들에게 죄송)은 사실 많은 U2빠들 사이에서 '명반'으로 꼽히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일단 발표한 연도가 가깝다. 이것만으로도 폄훼할 재소는 얼마든지 생산될 수 있다. 보노의 보컬이 존내 늙어 보인다, 힘이 빠졌다, 가사가 치열하지 않다, 연주가 멀리 처지는 느낌이다, U2도 진정한 상업음악의 일진로에 올라섰다 등등, 대략 '예전만 못하다'로 귀결되는 비판은 마치 선덕 연간에 홍무 연간을 그리고, 홍치 연간에는 선덕 연간을 그리고, 가정 연간에는 다시 그 선덕 연간을 그리고, 숭정 연간에는 다시 그 가정 연간 조차 그리는 추급비판의 무한루프(...)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요는 음반의 대표곡인 'Beautiful day'부터 수록곡 거의 대부분이 이러한 유평의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덕에 이들의 지의대로라면 졸자는 이따위 트랙들로 U2빠질을 시작했기 때문에 '향유 및 몰입도가 진정한 매니악들에 비해 일천하여' 금방 때려칠 수 밖에 없는 팬쉽을 쓸데없이 애써서 돈 8천원 내고 CD조차 아닌 카세트 테이프로 시작한 셈이었다(내가 써놓고도 불쌍하군).

  근데 사실 졸자는 이 음반이 좋았다. 정말 좋았다. 그 바로 얼마 전에 샀던 Bon Jovi의 <Crush>에 대해서도 이런 기정 잡기 좋아하는 매니악들의 비판이 쏟아졌지만(본 조비는 뭘 내놔도 이제는 비슷한 곡밖에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야 당연하지여 같은 사람인데여 ㅋ(MLTR이나 스트라빈스키같은 예외가 있다는 소리는 별로 안하고 시픔ㅇㅇ)) 실은 졸자는 이것도 죽도록 좋았다. Beautiful day는 똥망하기 직전의 Star TV에서 나오는 뮤직비디오만 봐도 질질 쌌고, Elevation은 이런 명곡이 왜 툼레이더 따위의 영화에 전용되었는지 짜증날 정도로 즐겨 들었다. In a little while은 시험전 영어선생(女)이 자습감독을 할 때 교실에서 흥얼거리다가 흑심이라도 있는 줄 알고 쳐맞았고(...),  Grace는 들으면서 자야 할지 깨 있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뭔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New York은 한밤중에 서면 한가운데에서 허세부리며 듣기 딱 좋았고, Wild honey는 토요일 오후에 버스타고 학원 가면서 무릎장단으로 흥얼거리는 데에 최적의 트랙이었으며, Stuck in a moment and you can't get out of it은 제목은 기분나빴지만(...) 가사는 좋았고, Kite는 웬지 듣다가 부모님 생각이 나서 시큰했으며(왤까), Walk on은 곡의 헌정대상이 U2답다는 느낌은 들었으나 나쁘지 않았고, When I look at the world는 뮤직비디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새삼 했으며, Peace on earth는 그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닳도록 들었었다. Bon Jovi의 <Crush>에 관해서도 모든 트랙에 대한 감상을 이런 식으로 써보라면 쓸 수 있다.

  글쎄 좋은 아티스트는 그 공력의 절반 정도도 발휘 못한 졸반이라도 그만한 감화력을 가지게 마련이다-고 강변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으나, 여하간 모두가 까내리기 좋아하는 이 음반에 대해서도 졸자는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후로 좀 더 가용금의 규모가 확대되고 이럭저럭 졸자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다른 많은 앨범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확대되었지만, 두 앨범에 대한 인상은 변한 것이 없다. 예컨대 졸자는 그야말로 명반으로 손꼽히는 <Boy>나 <Achtung baby>역시 들었지만, 그 앨범들의 수록곡에 대한 감상이 꼭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의 대역따위는 가볍게 씹어쳐바르는 정도였냐면 그건 결코 그렇지 않았다. '명반 체이서'들이나 '하드 매니아'들이 들으면 죽도록 까대겠지만, 실은 졸자로서는 오히려 낡은 느낌도 났고,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쪽이 오히려 이전의 앨범에 녹은 경향성들을 수렴하고 있는 거 같아 더 좋다는 생각도 언뜻 들었었다. 처음 들은 앨범이라 감흥이 각별했기 때문이 아니냐고 하다면 글쎄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예컨대 역시 결코 좋은 소리만 들은 건 아니었던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의 곡들은 오히려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보다도 더 좋다고 생각하는 곡들도 많았다(Yahweh라든지). 역시 맹타를 당했던 <No line on the horizon>도 매한가지. 요컨대 'I will follow'나 'Discotheque'이나 'With or without you'가 절대적으로 괜찮은 굿 올디 트랙이라는 건 공감하겠는데, 그렇다고 뒤에 나온 걸 무시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팬들의 대류는 별로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명반 체이서'와 '하드 매니아'의 맹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중의와 중평의 교집합부만 모아 모아 모아서 그 부분만을 즐기는 것이나, 무조건 이전의 작품군도 '의무적으로만 들어야 한다'고 강제하는 건 둘다 중정하지 못한 태도라고 적어도 이 졸렬한 팬쉽을 갖고 있는 졸자는 생각한다. 공부자께서도 꿈한번 못꾸신 거 가지고 덕이 쇠했다고 하셨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아티스트들이 힘이 빠지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만 글쎄. 베스트 앨범만 꼬박꼬박 챙겨 내는 화석화한 아티스트도 아니고 적어도 지금 왕성하게 공연활동과 음반 발표(싱글이든 뭐든)를 해내고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이런 비판이 타당할지 의문스럽기도 하고. 최소한 질적인 변화가 있다고 느낀다면 '화석화한 기억'이라도 이전의 음반을 즐기면 되는 것이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팬쉽의 스타트를 끊는 사람들을 훼방놓을 건 없다고 감히 생각한다. 오늘도 졸자의 MP3P의 플레이리스트에는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과 'Beautiful day'가 함께 걸려 있다.





학교 이 씨발 개 새끼들아 流說




이따위로 꼴랑 문자 하나 띡 보내면 끝이냐. 'ㅅ'


아 씨발 빡쳐서 말이 안 나온다.






  너희는 대체 밤새서 기다렸다가 한타차 싸움하고 바로 잠드는 사람이 있을 거란 인세의 지엄한 이치를 뭘로 보는 거야? 아오 빡쳐... 아침에 쿠키 삭제하라고 드립칠때 알아봤다.









부언 : 후유츠키 - 세금 낭비야.



주박 26 流說


▲ 박태환이_펠피쉬를_이길_수_없는_명명백백한_이유.jpg





- 덥다
  한 며칠 오가는 시간 까먹는게 싫어서 학교를 안 갔더니 죽을 지경
  아무래도 가긴 가야 할듯. 그나저나 대출도서 연체 어쩌지? 'ㅅ'


- 邪魔
  뭔가 귀찮은(몸을 빼치기 힘든) 일이 생길듯한 분위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음
  아 시발


- 앨리 맥빌
  딴건 모르겠고 확실히 기억나는 재소 하나는
  무릎 뒤쪽도 성감대가 될 수 있다는 거


- 수강신청
  6시간전
  한타차 싸움인건 구태여 부언할 필요가 없고
  1학기 때처럼 삽질만 안 하면야... 어쨌든 무운을 좀 빌어주셈 ㅇㅇ


- S모씨
  '통미봉타방' 은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거 같고
  그런 식으로 '무류의 명도'를 닦아봤자 곡과 마곡은 더 날뛸 뿐임 ㅇㅇ
  아예 泥戰할 자신이 없으면 대대를 하지 말고, 있다면 완전히 복멸시키는 게 통세의 지미라고 보는데
  뭐 이렇게 해 봤자 잘나신 분이 들을 리는 없을 거 같고 ㅇㅇ

  그 중정함의 가면이 언제까지 가는지는 참 지켜보고 싶어짐. '팬덤까' 들이 보기에는 
  '무위로 압복시키니까 별 수 없이 고두하는' 구도로밖에 안 보일텐데, 
  나야 당연히 팬덤까 드립치는 놈들은 혐오하지만
  사실상 저게 틀렸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음.
  결국은 극히 세목적인 부분의 극히 표정적인 측면에만 동의하고 있는 거 아님? 당신도 알 텐데.
  참 갑갑하게 사십니다.


- 결론은 덥습니다.




Back in business 流說

▲ It's better in the dark




사정상(?) 컴백함 ㅇㅇ

뭐 그래봤자 이런 한미한 곳에 별 달라질 게 있겠냐만서도... 어쨌든 컴백.





유신(維新/惟新) 드립 流說

▲ 이봐_개심도_제대로_하셔야지.jpg



  자치통감 권 226 당기 42 덕종 건중 원년(780) 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가을, 7월 병인일(4일)에 소주 도적의 우두머리 왕국량(王國良)이 항복했다. 왕국량은 본래 호남 아장으로 관찰사 신경고가 무강을 지키도록 하여 서원의 만족을 막았다. 신경고는 탐욕스럽고 포악한데, 왕국량의 집안이 부유하자 신경고는 그에게 사죄를 씌웠는데, 왕국량이 두려워하여 현을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키며 서원의 만족과 함께 무리 1천 명을 모아 주현을 침범해 노략질했으므로 호수 근처의 1천 리가 두루 그 해를 입었다.
  조서를 내려 형, 검, 홍, 계 여러 도의 병사를 합해 그를 토벌하도록 했으나 해가 이어져도 이기지 못했다. 조왕 이고(李皐)가 호남관찰사가 되자 말했다.
  "피곤한 백성들을 내몰며 반대로 기울어진 것을 주살하는 것은 계책 가운데 훌륭한 것이 아닙니다."
  이내 왕국량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장군은 감히 반역을 한 것이 아니라, 죽는 것에서 구원받고다 했을 뿐이오. 나와 장군은 함께 신경고에게 얽힌 바 되었지만, 나는 이미 성스러운 조정이 씻겨 깨끗하게 해준 것을 받았으니, 무슨 마음으로 다시 장군에게 날카로운 무기를 들이대겠소? 장군은 나를 만나 속히 항복하지 않으면 후회해도 따라잡을 길이 없을 것이오."
  왕국량은 한편으로는 기뻐했고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면서, 사신을 파견해 항복을 받아달라고 애걸하게 하고 여전히 의심하여 결정하지 않았다.
  이고가 이에 사신으로 변장하고 한 명의 기병을 데리고 500리를 뛰어 넘어가 왕국량의 성벽에 이르러 문을 채찍으로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조왕인데, 항복을 받으러 왔다!"
  왕국량은 달려나가 마중하며 절을 올리고 죄를 내려달라고 청했다. 이고는 그의 손을 잡고 형제가 되기로 약속하며, 공격하고 지키는 도구를 모두 불태우고 그의 무리들을 흩어지게 하면서 돌아가 농사짓게 했다. 조서를 내려 왕국량의 죄를 사면하고 이름을 내려 유신(惟新)이라 하였다.



  안사란 반도의 말예를 붙잡고 여전히 씨름해야 했던 대종에 뒤이어 즉위한 덕종에게는 이렁저렁 손이 가는 것이 한두가지는 아니었습니다만, 부침도 있었지만 유안-양염과 같은 정내의 기축에 대한 정치적 수완의 부족, 주차나 다른 수많은 번진 절사들의 조반 상쟁으로 어려운 가운데 그나마 효율을 떠나 가장 유력한 통어수단(사람을 이렇게 비겨도 될까 모르겠습니다만)이었던 곽자의마저 재위 초에 훙거함에 따라 지난한 가운데서도 당조의 연강을 위해 진력했다는 점만은 높이 살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왕국량 정도의 반변이란 꽤나 자주 일었던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사세가 9세기 초에는 소위 '번진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반을 닦는 전기가 되었다는 점은 숙종-대종-덕종 삼세가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반증이겠지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정리해서 좀 길게 포스팅을 해보고자 합니다만...

  뭐 어찌되었든 덕종 재위기의 고투는 이번 포스팅에서 직접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바는 아니고, 실은 피식 웃었던 건 저 개심해서 달았다는 이름이었습니다. 유신이라닊ㄲㄲㄲㄲㄲㄲ 뭐 정확하게 아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미한 제가 짧게 아는 한에 의거해 감히 말씀을 올리면 저 惟는 維하고도 상통하는 것이고, 나중에 근현대까지도 이런저런 역사적 전기에 승명되면서 통째로 요상한 고유의 지의를 갖는 구로 만들어져 버렸습니다만 실은 계사성이 강한 한 자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거였습니다. 더 자세히 귀납해서 설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여기서는 상관없써... 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일단 제가 많이 아는 바도 아니니 넘어가야겠지요. 여하간 유신드립은 예나 지금이나 써먹기도 좋고 인기도 좋았던 모양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물론 저 경우는 억지로 해석한다면 詩와는 관계없는 걸로 갖다붙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워낙 잘 써먹히는 관용구다 보니 별로 그렇게 보이질 않는군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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